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티베트 불교 (문단 편집) ==== 현대적 관점 ==== 딴뜨리즘의 기원에 대한 여러 가설이 제기되었지만 여전히 딴뜨리즘의 기원은 분명치 않다. 과연 현 시점에서 딴뜨리즘의 기원을 명확히 규명할 수 있을지 회의를 표시하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원을 통해 딴뜨리즘의 성격을 규정하고자 하는 시도는 계속되었다. 불교 딴뜨라와 힌두 딴뜨라의 기원에 대한 주장들은 대개 한 쪽이 다른 쪽에 의존하였다는 ‘빌린 모델(borrowing model)’과 두 딴뜨라 이면에 공통적인 근원이 존재한다는 ‘기층 모델(substratum model)’의 두 양상으로 분류할 수 있다. 불교 딴뜨라와 힌두 딴뜨라, 특히 요기니 딴뜨라들과 샤이바 딴뜨라들의 공통적인 토대로 일종의 ‘종교적 기층’이 존재한다는 가설은 20세기의 많은 저명한 학자들에 의해 주장되어 왔다. '종교적 기층'이란 아리안족의 인도 아(亞)대륙 진출 이전부터 존재하던("pre-Aryan") 토착 부족의 종교와 문화를 의미한다. 비(非) 아리안계 토착 부족들은 아리안 족의 진출 이후에도 주변부에서 자신들의 공동체를 형성하며 존속하였다. 이들 부족들의 문화에 담긴 여신(女神) 숭배와 주술적 요소가 점차 아리안 족의 베다 전통(Vedic tradition)에 유입되었고 그 결과 힌두, 불교, 자이나교 등에 딴뜨리즘이 형성되었다고 추정된다. 그러나 이 가설은 1980년대 후반부터 옥스퍼드대의 알렉시스 샌더슨(Alexis Sanderson)에 의해 도전받았다. 샌더슨이 ‘종교적 기층’ 가설에 의문을 품는 직접적인 이유는 ‘종교적 기층’이라는 것이 결코 지각되어진 것이 아니라 단지 추론되어진 것에 불과하다는 데에 있었다. 샌더슨은 우리가 딴뜨라로서 지각하는 것은 항상 샤이바 딴뜨라거나 바이슈나바 딴뜨라거나 불교 딴뜨라거나 혹은 어떤 구체적인 전통에 속하는 딴뜨라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종교적 기층’ 가설은 불교 딴뜨라와 힌두 딴뜨라, 특히 요기니 딴뜨라들과 샤이바 딴뜨라들의 많은 공통점들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전혀 설득력을 결여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샌더슨은 비록 요기니 딴뜨라들이 다양한 의례 등 그 기원에 있어서 샤이바 딴뜨라들을 상당히 모방했지만, 요기니 딴뜨라들은 불교의 딴뜨라로서 샤이바 딴뜨라들을 배척하며 훌륭하게 기능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샌더슨의 이론은 루에그, 스페라, 데이비드슨 등에 의해 비판받았다. 웨더마이어 역시 힌두 샤이비즘과 불교는 정치, 경제, 문화와 사회적 공간을 공유하며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였기에 불교 딴뜨리즘이 전적으로 힌두 샤이비즘(Śaivism)으로부터 유래하였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비판하였다. 어느 쪽이 옳든 간에 한 가지 유의할 점은 라뜨나까라샨띠(Ratnākaraśānti)나 아바야까라굽따(Abhayākaragupta) 등 인도의 후기 딴뜨라 불교의 위대한 학승들이 요기니 딴뜨라들의 기원을 문제 삼은 자료가 지금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딴뜨라 불교가 적절한 불교적 의미를 주는 상징주의에 의존하면서, 이교적인 요소들을 흡수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명확한 의미가 그러한 요소들에 주어지면, 그들의 불순함은 제거되고, 그들은 불교의 이상을 표현하는 강력한 상징들로 탈바꿈하였다. [[http://www.budreview.com/news/articleView.html?idxno=110|이용현, 《요기니 딴뜨라들의 기원에 대한 논쟁》]] 불교 딴뜨리즘의 기원에 대한 여러 가지 설들은 불교 역사의 서술과도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19세기 근대 서구 학자들은 인도 불교의 쇠퇴와 불교 딴뜨리즘의 등장을 결부시켜 해석했다. 그들은 불교 딴뜨리즘이 힌두 샥티즘과 샤이비즘 등에서 유래하였다고 규정하고, 힌두이즘적 요소의 도입이 불교 내부의 도덕적 타락과 정체성 상실을 초래하여 인도 불교가 쇠멸하였다는 서사 구조를 고안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근본적인 결함을 내포한다. 서구 학자들은 그들에게 익숙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Abrahamic religions)의 개념으로 인도 종교를 해석하였다. 그 과정에서 샤이비즘, 샥티즘, 바이슈나비즘 등 다양하고 복잡한 인도 내 종교와 사상, 관습들이 '힌두교'라는 단일 종교처럼 취급되었고, 종교 간의 관계도 대립적이고 배타적인 관계로 묘사되었으며 여성의 가치는 평가 절하되었다. 또한 '생성-발전-번성-소멸'로 이어지는 유기체적 역사관에 익숙했던 서구 학자들에게 딴뜨리즘의 성(性)적 요소는 서양 고전(古典)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문명의 쇠락 징조로 해석되었다. 딴뜨리즘은 일종의 성적 타락으로 치부되어 서구인들이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인도 불교 소멸의 원인으로 채택되었다. 불교 딴뜨리즘으로 인도 불교의 쇠락을 설명하는 서술 모델은 제국주의 시대에 처음 등장하여 20세기 초중반까지 서구 학계에 만연하였다. 그리고 서구의 영향을 받은 일본은 물론이고, 초기에 서구와 일본의 연구 성과를 받아들이는데 급급했던 한국 학계에도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었다. 반면 인도 학자들, 특히 벵갈 출신 학자들은 딴뜨리즘을 불교의 등장 이전부터 존재하던 원시적인 문화적 저류(undercurrent)와 연관시키는 모델을 제시하였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선사시대부터 존재했던 토착 부족 문화는 아리안족의 진출 이후에도 '종교적 기층', 혹은 '저류'를 형성하여 유지되면서 주류 종교에 유입되었다. 그 결과 기존 종교의 성격과 달리 민중 지향적, 모계 지향적, 신체 지향적인 딴뜨리즘이 등장하게 된다. 서구의 낭만적인 성향을 가진 학자들도 이러한 인도 학자들의 주장에 동조하였다. [[https://books.google.co.kr/books/about/Making_Sense_of_Tantric_Buddhism.html?id=bGQKWr9CAMwC&source=kp_book_description&redir_esc=y|Christian K. Wedemeyer,《Making Sense of Tantric Buddhism: History, Semiology, and Transgression in the Indian Traditions》]] 한편 대승 불교의 중관, 유식 논사들은 학자이자 동시에 밀교 수행자들이었다. 《유가사지론》으로 대표되는 유가행 이론의 완성 이후 이들은 유가행의 실천을 목적으로 밀교 의궤를 창안하였다. 또한 《대일경》, 《금강정경》과 같은 밀교 경전에 주석을 달았고, 바라밀승의 수학 이후 진언승을 수학하는 대승 교단의 현밀겸수(顯密兼修) 전통을 확립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밀교의 교리적, 실천적 정통성을 보여준다. [[https://www.kci.go.kr/kciportal/landing/article.kci?arti_id=ART002186282|정성준, 《인도밀교의 성립에 나타난 후기중관파와 밀교의 교섭 고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